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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간 제조현장 지킨 엔지니어 김용규 부사장 "성실함은 최고의 보증수표다"

43년 간 제조현장 지킨 엔지니어 김용규 부사장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던 중 진주기계공고를 다니던 사촌으로부터 기술인에 대한 가능성을 듣게 됐습니다. 장남으로서 가난을 극복하고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진주기계공고에 진학하게 됐고, 기술인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됐습니다. 취업 이후 ‘부장’이라는 직책을 꿈꾸며 야간대학에 진학하고 품질관리기사 1급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차근차근 쌓았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기술인 출신의 경영자가 돼 제가 사회 초년생 시절에 꾸었던 꿈보다 더 큰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 147번째 수상자 김용규 부사장은 치공구 제작을 시작으로 43년간 제조 현장을 지켜 온 엔지니어다. 품질을 향한 끊임없는 개선활동과 철저한 주인 의식을 토대로 말단 사원에서 최고 경영인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현장의 노하우를 살린 품질경영 덕분에 품질과 생산의 안정화를 이끌어 냈고, 에너지 저감 제품 개발로 꾸준한 매출 향상과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논에서 키워나간 기능인의 꿈
김용규 부사장은 1956년 경상남도 진주시 하촌리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빈농이었고, 형제들도 많아 늘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가난했다. 학창시절 성적은 좋았지만 학비를 제때 납부 못해 ‘외상 공부하는 놈’이라고 혼나는 일도 많았다.

중학교도 어렵사리 졸업한 김 부사장에게 고등학교 진학은 사치였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사촌 형으로부터 기술인의 가능성을 전해 듣게 된다. 그에 매료된 김 부사장은 최고의 기술자가 돼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주경야독하면서, 경쟁률이 높았던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당당하게 합격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전거와 리어카, 탈곡기, 원동기 등을 직접 고치는 등 기계와 친했던 김 부사장에게 고등학교 수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또한 남들보다 늦게, 그리고 어렵게 진학한 만큼 열심히 학업에 임해 산학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5년, 국방부 조병창(현 S&T모티브)에 입사했다. 받은 봉급은 가족 부양에 큰 도움이 됐고, 고마운 마음에 ‘내 회사’처럼 성실히 근무했다. 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했다. 몸이 힘들어도 언제나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췄다. 입사 1년 뒤에는 야간에 부산공업전문대학 기계과를 다니며 역량을 높였다 하지만 1977년도 8월,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읜다. 하루아침에 가장이 됐고, 막대한 빚까지 물려받았으나 빚을 청산하고 나니 직장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관리자로 거듭난 말단사원
국방부 조병창은 1970년대 산업현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우수한 기계설비와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선진 기술 및 품질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고 일반기계기사2급, 소방설비기사2급, 실기교사(기계)교원자격증, 품질관리기사1급 등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적인 품질 관리자의 밑거름을 다졌다.

품질 개선을 통해 꾸준히 성과를 보이던 김 부사장은 상농기업에 생산과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안정적이지만 제약적인 대기업보다, 불안전하지만 그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직했다. 이곳에서 더 많은 분야를 담당하며 설비 제작, 원가 관리, Worst Item 개선 등 생산관리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관리자로서의 시작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수였던 생산부장에게 매일 혼나다시피 일을 배웠다. 하지만 주눅 들거나 반발하지 않고 혹독한 교육이라 믿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한번 했던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직 6개월 만에 생산부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관리능력이 향상됐다. 이는 현장 실무와 관리 능력을 겸비한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 최상의 결과를 내다
어엿한 관리자로 신임을 받던 김 부사장은 1996년 제일전기공업㈜에 품질보증부장으로 또 한 번 스카우트된다. 당시 회사는 품질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전 직장에서 익혔던 현장 관리 노하우와 개선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부서원들과 함께 주인의식을 갖고 미흡한 시스템을 보완해 나갔다. 1년간의 품질 혁신 활동을 거쳐 품질 안정화를 이루어낸 김 부사장은 3년 만에 생산부서장. 생산이사를 거쳐 상무이사 공장장이 되기에 이른다. 회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특급 승진이었다.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잠시 다른 회사에 적을 두는 동안 전반적인 경영에 대해 경험을 쌓았고, 2010년 제일전기공업㈜에 부사장으로 돌아왔다. 마침 당시 회사는 적자 경영에 허덕이고 있었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먼저 직원들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금과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기술인 출신 부사장의 진심 어린 호소는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공정 및 원가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고, 그 결과 1년 만에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이익이 직원들의 성과금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감히 직원들에게 약속한 성과금과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는 직원들의 사기와 열정 제고로 이어져 오히려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선 활동에 참여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2016년 품질경영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회사는 최근 3년간 품질 경쟁력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인정받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꿈을 위해
첫 직장 재직 시 ‘부장’이라는 직책을 목표로 삼았던 김 부사장은 지금의 회사에서 그 꿈을 이뤘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은 동의대 겸임교수와 동의과학대 외래교수를 통해 이뤘다. 이제 그는 자신처럼 꿈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후배들을 도울 생각이다.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해 도제과정, IPP과정, 재직자과정을 운영하며 사원들은 물론 특성화고 학생들도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 중이다.

산업현장교수로 활동하며 교재를 집필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등 교육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교수 지원 사업이나 재능 기부를 통해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길 희망하고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제일전기공업㈜을 잘 경영해 세계에서 알아주는 스마트 배선기구 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꿈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 즉시, 어차피 할 일이라면 최고가 되자’는 생활신조를 오늘도 가슴에 새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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